여성 치매 위험 2.25배…AI가 찾아낸 남녀 노화 차이

남성과 여성은 같은 나이여도 몸속 장기가 늙어가는 속도와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공지능(AI)과 대규모 생체 데이터를 활용해 남녀의 노화를 따로 분석한 결과, 성별에 따라 노화가 진행되는 장기와 질병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따르면 미국 컬럼비아대 준하오 원 교수팀이 이끄는 글로벌 연구 협력체 ‘MULTI 컨소시엄’은 15개 장기 시스템을 분석해 38개의 성별 특이적 생물학적 노화 시계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노화 궤적이 어떻게 다른지 분석했다.
사람은 주민등록상 나이가 같더라도 실제 몸속 상태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이를 나타내는 개념이 생물학적 나이다. AI가 사람의 생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한 생물학적 나이에서 실제 나이를 뺀 값을 ‘생물학적 연령 차이(BAG)’라고 한다. 이 수치가 높다는 것은 실제 나이보다 몸이 더 늙은 상태로 나타난다는 의미다.
기존 AI 노화 시계에는 한계가 있었다. 남성과 여성의 데이터를 구분하지 않고 한꺼번에 학습시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남녀는 호르몬 체계와 체지방 분포, 면역 반응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이를 하나의 기준으로 분석하면 각 성별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노화 신호를 제대로 포착하기 어려울 수 있다.
원 교수팀은 영국 바이오뱅크 데이터를 활용해 남성과 여성을 나눠 노화 시계를 학습시켰다. 그 결과 지방 조직 MRI를 활용한 노화 시계 등을 비롯한 일부 분석에서 오차가 크게 줄어들었고 예측 결과도 더 안정적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건강한 남성 집단과 비교하고 여성은 건강한 여성 집단과 비교하는 식으로 성별에 맞는 기준선을 설정해야 노화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유전체와 단백질체, 대사체 등 다양한 생체 빅데이터도 분석했다. 그 결과 노화를 이끄는 주요 신체 시스템에서 남녀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확인됐다.
여성에서는 간 단백질체와 간 MRI, 전신 대사체를 이용한 노화 시계가 유전적 영향을 더 강하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임신과 출산, 완경, 에스트로겐 수치 변화 등 여성 특유의 생애 과정과 호르몬 환경이 간과 혈관 관련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여성의 경우 간과 소화기 대사가 노화할수록 심근경색이나 고지혈증 등 심장대사 질환 위험이 높아지는 유전적 연관성도 확인됐다. 수면 장애가 면역과 대사 노화를 앞당기는 관계 역시 여성에게서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남성은 다른 양상을 보였다. 혈액 속 면역 대사체와 피부, 비장 MRI를 활용한 노화 시계에서 유전적 특성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특히 비장의 노화 단백질을 분석한 결과 여성에서는 제한적인 수의 단백질이 반응했지만 남성에서는 종양괴사인자(TNF)를 포함한 46개의 염증 지표가 동시에 증가했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남성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전신적인 만성 염증과 관련된 노화 경로가 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호르몬과 면역 변화가 심혈관 질환으로 이어지는 위험 경로 역시 성별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성별에 따른 노화 차이는 질병 위험을 예측하는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연구진이 20년간의 추적 관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뇌와 심장, 폐, 간 등 여러 장기의 단백질 노화가 여성의 사망 위험과 일관된 연관성을 보였다. 남성에서는 고콜레스테롤혈증과 당뇨 합병증, 심방세동, 관절염 등 여러 장기와 관련된 질환 위험이 함께 나타났다.
특히 알츠하이머 치매 위험을 예측하는 과정에서 성별 차이가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기억력이 저하된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뇌 MRI를 분석해 생물학적 뇌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더 늙은 경우 치매 위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생물학적 뇌 나이가 또래 기준보다 한 단계 더 늙은 것으로 나타났을 때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행할 위험은 남성에서 74% 높아졌다. 여성에서는 위험이 2.25배 증가했다. 같은 수준의 뇌 노화가 관찰되더라도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행하는 위험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노화를 하나의 기준으로만 평가하기보다 성별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향후에는 성별에 특화된 노화 시계를 활용해 질병 위험을 보다 세밀하게 예측하고, 신약 임상시험에서 환자를 선별하거나 질병 예방 및 항노화 치료 전략을 마련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원 교수는 노화가 온몸에서 동시에 일어나지만 어떤 장기가 먼저 영향을 받고 어떤 질환으로 이어지는지는 남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개발한 성별 특이적 노화 시계가 향후 남녀의 차이를 반영한 질병 예방과 치료 연구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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